[문화]‘깜깜이 개헌案’ 강행은 新적폐다 - 김상겸
2018-03-17

‘깜깜이 개헌案’ 강행은 新적폐다



현 정부가 대선 때 공약으로 내세웠던 적폐 청산은 이제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되고 있다. 공직사회의 개혁을 위한 작업으로 시작된 적폐 청산은 문화·예술계, 교육계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최근에는 적폐 청산의 하나로, 감춰지고 숨겨졌던 성폭력·성추행을 밝히고 이를 단죄하자는 미투(#MeToo) 운동이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사회지도층의 적폐가 드러나면서 그동안 볼 수 없었던 그들의 후안무치한 행태는 놀라움을 넘어서 충격을 주고 있다. 또한, 이를 보면서 진실은 감춘다고 감춰지지 않으며 덮는다고 없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적폐를 청산하기 위해서는 사회적으로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고 국민의 의식도 변해야 한다. 또한, 당사자들의 자성과 책임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적폐 청산이란 이름으로 또 다른 적폐를 만들어선 안 된다. 적폐 청산으로 억울한 희생자를 만들어서도 안 된다. 대부분의 적폐는 법을 위반한 것이다. 법치국가에서 실정법을 위반한 이상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런데 적폐 청산이 미래를 위한 게 아니라, 단지 과거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잘못에 대한 책임보다는 형평성만 주장함으로써 목적이나 취지가 왜곡될 수 있다.

현행 헌법은 전문에서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라고 하여, 이미 국가의 기본법은 적폐를 그대로 둬선 안 된다고 선언하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권력과 힘 앞에서, 인정 속에서 관행이란 이름으로 적폐를 적폐로 보지 못하고 법과 제도에만 그 책임을 돌린 적이 많았다. 심지어 법 앞에서 정의를 실현하고 법을 준수하겠다는 약속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법치국가에서 국가의 기능은 법의 기능이다.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고 국가작용을 규율하는 법률은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만든다. 법을 준수해야 하는 것은 그 법을 만든 주체가 우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적폐 청산도 법의 테두리 안에서 해야만 하는 것이다.

최근 정부의 개헌(改憲) 작업이 가속화하면서 개헌 논의가 다시 전면에 부각되고 있다. 대통령은 국회의 개헌 작업이 진척되지 않으면 정부가 개헌안을 만들어 발의하겠다고 했다. 헌법 제128조를 보면 대통령도 개헌안을 발의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 헌정사에서 정부가 개헌안을 발의한 경우는 거의 없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헌법상 개헌 절차는 국회를 중심으로 돼 있기 때문이다. 헌법은 개헌 절차에서 개헌안이 발의되면 20일 이상 공고하고 60일 이내에 국회에서 의결해 국민투표에 회부하도록 하고 있다. 이는 국회가 개헌안을 논의하고 가부를 정하도록 함으로써 국민의 대표기관이 개헌을 주도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개헌이 국가의 중요한 과제라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30년 동안 시행되고 있는 현행 헌법을 개정하려면 보다 광범위한 논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개헌안에 대해 충분한 국민 의사의 수렴 과정을 거쳐야 하고 그 절차는 공개적이고 투명하게 이뤄져야 한다. 그리고 그동안 축적된 개헌에 대한 자료도 검토해야 할 것이고, 각 분야의 의견도 수렴·정리해야 한다. 개헌 시기를 정해 무리하게 개헌안을 만들다 보면 개헌안 자체가 논란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최근 개헌 논의를 보면 너무 정치권 중심으로 진행되는 듯하다. 더구나 각 정당이 너무나 다른 목소리를 내는 상황에서 개헌 작업이 제대로 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개헌안을 발의하면 국회는 모든 일정을 중단하고 개헌안을 심의해야 하는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이는 국민 그 누구도 원하는 개헌 절차가 아니다. 1987년 개헌은 시대적 상황 때문에 시간에 쫓겼지만, 대통령 직선제라는 목표가 있었기에 국민의 동의를 얻었다. 그런데 지금은 개헌을 서둘러야 할 이유가 없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바꿔야 한다는 것에서 개헌 논의가 시작됐지만, 조문(條文) 하나하나에 대해 충분한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쳐 개헌안을 만들어야 한다. 지금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개헌 작업이야말로 과거 우리가 경험했던 ‘일방적인 개헌’의 적폐를 연상케 한다. 발의 며칠 전이라는데도 국민은 정확한 조문조차 모르는 ‘깜깜이’ 방식이다. 급할수록 돌아가야 한다는 경구(警句)가 아니더라도, 국민이 원하는 개헌을 하는 것이 국회와 정부가 해야 할 국민에 대한 책무다.

김상겸 (동국대 교수·헌법학)
출처-문화일보 2018. 3.15[오피니언]
<원문>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8031501033011000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