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방아쇠 당긴 미·중 환율 전쟁…한국 직격탄 맞을라- 최병일
2019-08-19

방아쇠 당긴 미·중 환율 전쟁…한국 직격탄 맞을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급기야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했다. 미·중 무역전쟁 발발 1년 만에 ‘관세전쟁’은 ‘환율전쟁’으로 확대됐다. 강도를 더해가는 미·중 무역전쟁이 몰고 올 폭우와 강풍에 휩쓸려가지나 않을까 전 세계가 전전긍긍하고 있다.



트럼프는 이미 대선 후보 시절에 “대통령이 되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겠다”고 중국을 몰아세웠지만, 중국은 그동안 환율조작국 지정의 3대 요건(대미 무역수지 흑자, 경상수지 흑자, 외환시장 개입)을 아슬아슬 피해왔다. 트럼프는 ‘1988 무역종합법’의 주관적이고 느슨한 조항을 근거로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는 초강수를 뒀다.



트럼프가 참고 참았던 환율조작국 카드를 꺼내 들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상대를 위협해 판을 키운 다음 협상 테이블로 상대를 불러내고 양보를 받아내려는 트럼프의 전형적인 협상 전술이다. 중국이 자기 생각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 것에 대한 국면 전환을 시도하려는 의도도 읽힌다.



트럼프의 관세 폭탄과 미국의 지속적인 대중국 ‘기술 굴기’ 압박에도 미국의 기대만큼 중국의 양보는 없었다. 오히려 마오쩌둥식 지구전으로 일관하는 중국에 트럼프의 인내심이 결국 바닥났다. 중국은 즉각 “머리에 총구를 들이대는 겁박 속에선 협상할 수 없다”라거나 “지금의 중국은 1840년대 아편전쟁 때의 중국이 아니다”라며 반발했다. 트럼프의 위협은 중국의 자존심을 할퀴고 결기를 더 부추긴다. 중국은 트럼프의 표밭인 미국 중서부의 농산물 수입을 중단했고, 중국 인민은행은 ‘1달러=7위안’이란 심리적 마지노선을 깨는 ‘포치(破七)’를 용인했다.



그렇다면 환율전쟁의 끝은 어디일까. 1980년대 미국의 경제 패권을 위협하던 일본의 추격에 결정적인 타격을 가한 ‘플라자 합의’의 재판을 미국은 꿈꾸고 있을지도 모른다. 일본은 세계 최대의 시장이자 자신의 군사동맹인 미국을 외면할 수 없었다. 중국은 일본이 아니다. 미국의 군사 패권에 도전하는 중국에 미·중 무역전쟁은 물러설 수 없는 대회전이다.



중국이 위안화 가치를 안정화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지 않는다면 미·중 환율전쟁은 가속할 것이다. 지금까지 관세 폭탄의 범위 밖에 있던 중국산 수입품 3000억 달러어치에 대해 9월 1일부터 10% 관세 부과가 집행될 것이다. 나아가 트럼프는 중국에 부과된 10% 관세를 25%로 인상하고, 25% 관세가 적용되던 물품에 추가 관세도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지난해 12월 ‘부에노스아이레스 휴전’ 선언 이후 소강상태이던 미·중 무역전쟁이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확대된다면 세계 경제는 어두운 터널 속으로 들어간다. 그 터널의 끝에 불빛이 보일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불확실성의 공포가 세상을 지배할 수 있다.



결국 문제는 한국이다. 미·중 환율전쟁이 시작됐다는 뉴스에 달러당 1200원 선을 훌쩍 넘긴 한국 원화의 추락은 1997년 말 IMF 구제금융을 요청했던 그 쓰라린 기억을 소환하고 있다. 다른 선진 경제보다 월등히 높은 무역의존도, 국제 투기세력의 교란에 금융시장이 유리알처럼 노출된 한국의 운명은 ‘퍼펙트 스톰’이 몰려오는 망망대해에 몸을 맡긴 일엽편주(一葉片舟)와 다르지 않다.



지난해 미·중 무역전쟁이 시작됐을 때 한국엔 부정적 영향이 미미하다던 정부는 “펀더멘틀(경제 기초)은 튼튼하다”는 말로 시장을 안심시키려 한다. 희망과 가능성을 구별하는 현실 감각이 부족한 선장을 보는 승객들은 불안해한다. 이런 불안 심리를 조기에 진정시키지 못하고, 펀더멘틀을 진짜로 튼튼하게 만들 방책을 내놓지 못한다면, 쌓아둔 외화보유액만으로는 막기 어려운 걷잡을 수 없는 위기가 시작될 수도 있다.

최병일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한국국제경제학회 회장)
출처- 중앙일보 2019. 8.13[칼럼]
<원문>https://news.joins.com/article/235506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