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비즈] 쿠팡 김범석 동일인 지정, 갈라파고스 규제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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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을 위원장으로 하는 ‘규제합리화위원회’가 지난 4월 15일 첫 회의를 열었다. 명칭도 규제 완화 또는 규제 개혁 대신 가치 중립적인 ‘규제 합리화’로 명명됐다. 특히 한국은 통상국가이기 때문에 글로벌 스탠더드 준수가 숙명이라고 했다. 하지만 ‘글로벌 스탠더드’를 위해서는 한국형 갈라파고스 규제를 없애는 것이 제1순위다.
공정거래법에는 ‘동일인’이라는 용어가 있다. 다른 나라 말로는 번역도 쉽지 않다. ‘모든 것을 책임지는 대표자’란 의미다. 대기업집단 전체를 묶어 총수 한 명에게 규제를 귀속시키는 나라는 전 세계에 한국밖에 없다. 1986년 재벌 규제를 목적으로 탄생한 이 제도는 40년이 지난 지금도 갈라파고스 섬처럼, 세계와 단절된 채 존재해 왔다.
공정위는 2021년 쿠팡을 ‘공시집단’으로 지정한 이후 2025년까지 ‘공정거래법 시행령’ 규정상 “자연인이 아닌 법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할 수 있는 예외 조건을 충족시킨다”며 김범석 쿠팡Inc 의장 대신 ‘쿠팡 법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했다.
동일인을 법인으로 지정하려면 자연인으로 지정하는 경우와 기업집단의 범위에 차이가 없고, 기업집단을 지배하는 자연인이나 그 친족이 국내 계열사 주식을 보유하지 않으며, 친족이 국내 계열사 경영에 참여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자연인이나 그 친족과 국내 계열사 사이에 채무보증이나 자금 대차가 없어야 한다.
사정이 변한 게 없다면 법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한 조치는 계속 유지되어야 한다. 그러나 최근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경실련이 동일인을 김범석 의장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했고, 공정위도 이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6년 만에 ‘동일인이 자연인으로 바뀔지’ 귀추가 주목된다.
변화가 있다면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사건’이 터진 것이다. 이를 문제 삼아 김 의장을 동일인으로 지정한다면, 이는 책임소재를 직제상 담당자가 아닌 김 의장에게 돌리는 셈이 된다. ‘무조건 대주주가 책임져야 한다’는 갈라파고스적 사고가 발동된 것이다.
개인정보 유출 사태 이후 쿠팡에 대한 사회적 감시 강화 요구가 커지면서 이것이 공정위의 재검토 논의에 영향을 주었다면 ‘규제가 경제적 논거가 아닌 여론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가 된다. ‘법의 정합성’을 포기한 것이다.
한국 규제당국의 권한은 한국 영토 안에서 발생하는 행위에 한정된다. 쿠팡Inc는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된 미국 기업이다. 이미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공시 의무와 각종 규제를 받고 있다. 그런 기업의 경영자를 한국 공정거래법상 동일인으로 지정해 ‘친족 공시, 내부거래 규제 등의 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한국 규제를 역외 적용하는 것이다. 미국 상장 기업의 최고경영자에게 한국 규제당국이 ‘당신이 한국 기업집단의 총수’라고 선언하는 것은 규제는커녕 분쟁의 불씨가 될 소지가 다분하다.
쿠팡의 미국 투자자들은 한미 FTA 위반 가능성을 제기하며 ‘ISDS 제소’ 움직임을 보일 수 있다. FTA 체결 국가의 기업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하는 경우 ‘FTA 협정상 최혜국 대우 조항을 위배’하는 셈이 된다.
정부는 글로벌 스탠더드를 강조한다. 그러나 세계 어디에도 없는 총수 지정제를 여론이 달아오른다는 이유로 강화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불필요한 규제가 기업의 성장 의지를 꺾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것이 정부 스스로 내세운 규제 원칙이다. 쿠팡이 성장했다는 이유로, 5년간 유지된 지정 방식을 뒤집는 것은 그 원칙에 반하는 것이다.
개인정보 침해는 개인정보보호법으로, 불공정 거래는 공정거래법으로 접근해야 ‘목적과 수단’이 일치한다. 그래야 통상문제로 비화되지 않는다. ‘기업에 문제가 생기면 실제 책임자가 아닌 총수를 불러 모든 책임을 귀속시키면 그만’이라는 인습적 사고를 버려야 한다. 자연인이 아닌 쿠팡을 동일인으로 지정하는 것이 정책 순리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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