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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지 경제]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관한 단상 - 황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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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바른사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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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관한 단상


 

“오늘 혁신에 매진하는 나라가 내일 세계경제를 장악할 것이다. 이것만큼은 미국이 (다른 나라에게) 결코 양보할 수 없다.” 버락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이던 2014년 1월에 한 말이다. 그리고 2015년, 미국의 국가경제위원회와 과학기술정책국은 공동으로 준비한 보고서-‘미국의 혁신전략’은 오바마의 이 발언을 인용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4차 산업혁명으로 알려진 세계사의 중대한 변곡점에서 미국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 이만큼 간결하면서 명쾌하고 의지가 담긴 웅변을 대신하는 표현을 찾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돌아보면, 제4차 산업혁명이라는 신조어가 나타나 세상에 퍼지기 시작한 것은 클라우스 슈밥이 주도하는 2016년 다보스 포럼 부터였다. 그러나 오바마 발언에서 보듯이 이미 주요국들은 새로운 혁신기술과 경제조직이 기존의 국가 간 비교우위의 판도를 창조적 파괴하는 위협이자 기회요인임을 인식하고 자국의 경쟁우위를 유지, 확장시키기 위한 전략을 준비해서 실행하고 있었다. 독일이 일찍이 2011년에 ‘인더스트리 4.0’을 거론한 배경도 근원에 있어서는 오바마의 발언 배경과 다르지 않다.

그리고 ‘미국이 결코 양보할 수 없는 한 가지’ 에 대해서는 정파를 떠나서 오바마, 트럼프, 바이든의 생각이 같은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행정부는 애플, 알파벳 등 자국의 혁신 대기업들이 세금이 낮은 국가로 기술 특허 등을 이전한 것을 되돌리기 위해 미국의 법인세율을 대폭 인하하는 등의 정책으로 자국 기업들의 리쇼어링을 유인했고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바이든 행정부의 인플레이션 감축법 또한 오바마 발언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하고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이 법은 사실상 미국에서 제조한 전기차에만 최대 7,500 달러의 보조금을 지급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그 숨은 의도는 글로벌 혁신기업의 투자와 생산을 미국으로 끌어들여 국제 비교우위 판도를 재편하겠다는 것이다.

결국 바이든의 인플레이션 감축법은 오바마의 혁신 전략의 연장선상에서 트럼프의 자국의 글로벌 기업에 국한된 리쇼어링 정책보다 판을 키울 것이다. 우리 정부는 국내 수출산업에 미치는 피해를 우려해서 미국 행정부와 다각도로 협상을 하고 있지만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 이유는 인플레이션 감축법이 첫째, 법률로 확정한 제도이기 때문이고 둘째, 동맹국의 피해를 간과한 일과성 해프닝이 아니라 ‘미국이 결코 양보할 수 없는 한 가지’ 전략의 연장선상에 있기 때문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장기적인 영향이다. 인플레이션 감축법은 한국을 포함한 일부 수출기업에게 당장은 불리한 제도이지만 소재, 부품의 공급망 문제만 완화되면 결국에는 미국에서 투자, 생산해서 판매하는 것이 수출기업의 경제적 이해와 합치되기 때문이다. 중국과의 패권 다툼을 빌미로 미국이 ‘메이드 인 아메리카’의 고압적인 정책을 펼치기 때문에 미국에 수출하는 주요 기업들이 마지못해서 수동적으로 미국행 투자를 늘린다고 보는 것은 오판일 수 있다. 4차 산업혁명 기술의 발전과 함께 인건비 부담이 완화되면서 수요가 많은 곳에서 생산하는 것이 더 나은 입지 전략일 수 있기 때문이다.

산업화 시대에도 기술은 제조원가에서 인건비가 점하는 비중을 낮추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다. AI, 3D 등의 4차 산업혁명 기술들은 제조업을 스마트하게 변모시킴으로써 투자 결정 시에 인건비의 중요성을 더욱 낮출 것이다. 그렇게 되면 선진국의 기술과 자본으로 양질의 저렴한 노동력이 비교적 풍부한 개도국에서 물건을 만들어 선진국으로 역수입하는 국제분업 시스템의 효용은 크게 감소하거나 사라지게 된다. 다른 조건이 같다면 수출기업으로서는 혁신 기술을 쉽게 접할 수 있고 수요자 취향의 변화에 빠르게 대응이 가능한 현지에서 투자·생산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다. 그 결과 전통적인 국제분업 시스템은 재편되고, 부자 나라로 생산과 투자가 쏠리면서 4차 산업혁명은 국가 간 부익부 빈익빈을 초래할 우려가 크다.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고민하는 정책당국은 바로 이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특히 지금의 산업혁명 시기에 경제성장, 일자리 창출의 엔진을 점화시키는 변수는 기술이나 자본이 아니다. 우리 역사의 비근한 예를 들면, 금속활자는 고려에서 세계 최초로 발명했지만 세계 역사, 인류 문명을 바꾼 것은 독일의 금속활자였다. 1993년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더글라스 노스가 일관되게 역설했듯이 경제성장의 원천은 효율적인 경제조직의 발전이다. ‘서구 세계의 부상(1973)’에서 노스는 이렇게 말한다: ‘서구인의 풍요로움은 (동양에 비해) 비교적 새롭고 독특한 현상이다. 독특한 역사적 산물인 서구 세계의 부상은 효율적인 경제조직의 발전 때문에 가능했다. 한 마디로 말하면 효율적인 경제조직의 성장의 원천이다.’

노스 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지금의 한국은 효율적인 경제조직의 발전을 제도적으로 잘 뒷받침하고 있을까? 가장 중요한 것이 소유권인데 이와 직결된 조세제도를 보면 한국의 법인세 최고세율은 25%로 OECD 평균값 21.2%(2021년 기준)보다 높다. 무슨 일이 터지기만 하면 기업인을 형사 처벌하겠다 하고 혁신을 가로막는 등의 정부규제 부담은 87위(WEF, 2019년)로 매우 열악하다. 또한 경제조직의 유연한 변화와 발전과 관련이 깊은 노동시장 제도 중에서 고용 및 해고 관행의 경쟁력은 102위로 이미 세계 최악이다. 그럼에도 최근에 민주당의 주도로 노조의 극렬한 불법투쟁에 면죄부를 주는 이른바 ‘노란봉투법’을 더하겠다고 하니 이래저래 한국의 투자 매력도는 갈수록 추락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4차 산업혁명 기술발전에 힘입은 국제분업 판도의 재편, 미국의 혁신전략에 기초한 글로벌 공급망 재편, 그리고 한국의 경제제도 현황과 전망 등을 종합해볼 때 ‘투자 엑소더스(exodus)’는 계속 확대가 불가피할 듯하다. UN국제무역개발협의회(UNTAD) 자료에 의하면 4차 산업혁명이 처음 거론된 2016년부터 작년까지 6년 동안 한국에 들어온 해외직접투자(FDI)는 연평균 129억 달러, 해외로 나간 FDI는 그보다 약 3배나 많은 389억 달러였다. 추세변화로 보면, FDI 순유출은 2016년 178억 달러에서 2021년에는 440억 달러로 빠르게 증가해서 지난 6년 동안에 약 2.5배 증가했다.

만약에 이런 추세를 반전시키는 전기를 구하지 못하면 우리 청년들, 미래 세대의 일자리는 어디에서 구할 것인가? 노스는 앞서 인용한 책의 말미에서 효율적인 경제조직이 성장의 원천이라는 것은 새로울 게 거의 없는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이를 잊은 듯이 엉뚱한 정책에 낭비한다며 우회적으로 일갈한다.

황인학 (한국준법진흥원 원장)
출처-브릿지경제 2022. 10.3[칼럼]
<원문>https://www.viva100.com/main/view.php?key=2022100301000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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