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우 객원 칼럼니스트김석우 객원 칼럼니스트

 

해양국가로의 방향 설정이 대한민국을 세계적 강국으로 만드는 토대가 되었다. 중국대륙에 얽매이는 조공 체제와의 결별을 의미한다. 

  조선 왕조가 왜구의 침탈과 반역 세력의 준동을 염려하여 공도(空島)정책을 편 뒤 한반도는 바다와 관련되는 일을 업신여겼다. 뱃사람을 천인이라 무시하였고, 해양산업은 관심 대상에서 지웠다. 외부 세상과 격리된 우물 안 개구리가 되었다. 세계 일주 항해의 완성과 산업혁명에 성공한 서양 세력과도 담을 쌓았다. 이름만 근사한 은자의 나라(Hermit Kingdom)였다. 대륙 중국에 가려져 넓은 세상의 흐름이나 선진문물을 알 턱이 없었다. 포르투갈 상인에게 조총을 받아들인 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의 왜군이 1592년 조선을 침략해 7년간 전 국토를 짓밟았다. 조선의 국력은 극심하게 피폐해졌다. 그런데도 정신을 가누지 못하고 38년 후 병자호란(丙子胡亂)으로 다시 곤욕을 치렀다. 

  19세기 일본의 도쿠가와 막부가 페리 제독에게 문호를 개방한 후, 1868년 메이지유신(明治維新)으로 근대국가를 세웠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승리하여 조선을 식민지로 삼았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의 승리로 해방이 된 대한민국은 이승만의 지도력 덕분에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로 기틀을 잡았다. 이와 함께 해양 국가로 방향을 설정하였다. 

  이승만 정부는 6.25 전쟁 중인 1952년 1월 18일 진해 해군함정 위에서 인접해양에 대한 주권선언, 즉 ‘평화선’을 그었다. 미국 트루먼 대통령의 1945년 9월 28일 대륙붕 및 어업에 대한 2개의 선언을 선례로 삼은 것이다. 

  패전국 일본을 점령한 맥아더 사령관의 명령으로 일본의 선박이 제한 수역 (맥아더 라인) 밖으로는 나갈 수 없도록 금지했다. 한국은 반사적 이익을 얻었다. 1952년 4월 28일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의 발효로 ‘맥아더 라인’이 없어지면 일본 어선이 몰려오는 게 뻔하였다. 한국은 패닉상태에 빠졌다. 한국의 약 6만 척 무동력선은 어군탐지기를 갖춘 수백 톤급의 일본의 동력선들과 경쟁할 수 없었다. 한국의 영세한 어선과 황금어장을 보호하기 위해 이승만은 평화선을 선포한 것이다. 평화선을 침범한 일본 어선을 나포하여 선원과 함께 억류하고 경매 처분하기도 하였다.

이승만 대통령. [연합뉴스]
이승만 대통령. [연합뉴스]

 

  일본은 크게 반발하여 보복 차원에서 재일 한인 북송사업을 시작하였다. 1959년 12월부터 1984년까지 9만 3천여 명을 보냈다. 일본 정부는 물론 아사히신문을 비롯한 언론이 대대적으로 북한을 파라다이스라고 선동하였다. 저소득층인 재일 한인을 북한으로 보내 국가 부담을 줄이는 한편, 소위 남북한 등거리 정책의 발판을 깔았다. 6·25 전쟁으로 북한 주민이 대거 피난하여 노동력부족을 겪는 김일성을 도와준 셈이다. 일본은 소련 공산세력의 확산을 막는 한반도와 베트남 전쟁의 병참기지가 되어 순식간에 전후 부흥을 이루었다. 요시다 총리의 ‘정경분리(政經分離)’ 정책, 그리고 후임 이케다 하야토 총리의 ‘소득배증(所得倍增) 계획’ 실현으로 경제 대국으로 급성장하였다.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로 한국은 무상 3억 달러, 유상 2억 달러의 청구권 자금을 받았다. 그걸로 농지정리, 수리시설 정비를 시행하였다. 자금을 아껴 1억 2천만 달러를 투입하여 포항제철을 건설하고, 경부고속도로와 서울 지하철 1호선을 건설하였다. 박 대통령의 국가건설 (Nation Building)의 기본을 마련한 셈이다. 많은 신생국의 지도자가 외국 원조를 개인 주머니에 넣은 것과는 다르게, 이승만 대통령이나 박정희 대통령은 개인적 치부(致富)를 멀리하였다. 

박정희 대통령. [연합뉴스]
박정희 대통령. [연합뉴스]

 

  다시 바다를 돌아보자. 조선업은 선진국에는 사양산업이었음에도 일본은 계속 붙잡아 압도적 강국이었다. 박정희는 경제건설을 위한 전략산업의 하나로 판단하고, 정주영에게 조선업을 시작하라고 강권하였다. 정주영이 엄두를 못 내고 주저하자 박정희 대통령은 감옥 갈 각오하라고 엄포를 놓았다. 정주영이 바로 런던으로 떠나 바클레이즈 회장을 만났다. 5백 원 지폐의 거북선을 보이면서 차관 보증을 얻어내고, 그리스 선박왕 리바노스를 찾아가 26만 톤 유조선 2척의 주문을 받아 냈다. 울산의 황량한 모래벌판에서 조선소를 시작하였다. 한편으론 드라이독을 건설하고, 다른 한편의 육상에선 유조선의 부품조립을 시작했다. 2년 만에 유조선 2척을 진수시켰다. 결국 대한민국은 조선 강국 일본을 밀어냈다. 

  출발은 열악했지만, 결국 한국은 해양강국이 되었다. 중요한 전기는 1970년 1월 1일 제정 공포한 인접 대륙붕에 관한 법률이라 할 수 있다. 한반도 주변에 7개 광구를 설정하였다. 제7광구는 제주도에서 오키나와 해구(海溝)까지 한반도 육지의 연장으로 보고 획정한 것이다. 일본 정부는 등거리선 원칙에 따라서 한일 간 경계를 설정해야 한다면서 이의를 제기했다. 1970년 겨울부터 협상을 진행한 끝에 양측 주장의 중복구역을 공동 개발하기로 합의하여 1978년 6월 협정을 발효시켰다. 여러 차례 탐사와 개발을 하여 유징은 확인하였으나, 경제성이 없다 하여 실제 개발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1982년 발효한 유엔해양법 협약상 200해리의 경제수역(EEZ) 이론이 우세해지자 일본은 공동개발을 피하면서 협약 기간 50년이 되는 2028년 6월 22일이 다가오는데도, 만료 의사를 통보하지 않고 사태를 관망 중이다. 한일양국 공동개발구역에 제3국 중국도 인접해 있기 때문에 극동 3국 간의 국제정치가 물린 문제다.

  하여튼 제7광구 탐사 개발은 한국 해양산업의 주요한 전기가 되었다. 처음에는 걸프(Gulf)와 웬델 필립스(Wendell Phillips) 등 국제에너지 대기업의 기술과 자본이 들어왔지만, 탐사개발 과정에서 한국 과학기술 엔지니어의 기술 습득과 경험축적의 기반이 되었다. 1979년에 한국석유공사를 설립하여 지금은 세계 14개국에서 18개 해외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더 나아가 1986년에는 남극조약에 가입하고 남극대륙에 세종기지와 장보고기지를 건설하였고, 북극에도 다산과학기지를 운영하고 있다. 쇄빙연구선 아라온호가 2009년 진수하여 남극기지를 오가고 있고, 앞으로 열릴 북극해 항해를 위한 차세대 쇄빙선을 건조 중이다. 한국은 이제 명실공히 해양 강국이다.

  대우중공업이 독일에서 기술이전 받은 잠수함이 이젠 독일과 경쟁한다. 조선산업이 무너진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간 조선산업 협력을 요청하고 있다. 미국 항공모함 수리를 한국에 맡기고 있다. 폴란드에는 K9 자주포와 다연장로켓 천무를 수출하며 방위산업 협력을 넓히고 있다.

  한반도는 해양강국으로서의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다. 제주도는 동아시아의 매우 중요한 전략기지다. 국력을 주변에 투사하는 거점이다. 그래서 제주도 강정항 건설은 의미가 크다. 또한 평택항은 미국의 아세아 군사전략 상으로도 불침항모 역할을 한다. 한국 안보의 핵심 기둥인 한미동맹이 작동하는 주요 기지다. 이어도(離於島) 해양과학기지 또한 서해를 관리하는 주요 거점이 되었다. 중국이 우리의 서해를 내해화하려는 욕심을 견제하게 된다. 

  우리의 영토주권 특히 해양관할권을 지키기 위해 이승만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이 미리 다져놓은 기득권을 잘 지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도 사관학교 통합구상은 적절하지 않다.

  강정항 진입로의 ‘굴럼바위’를 보호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몇 년간 방해하던 무리의 속셈은 무엇이던가. 부산 천성산의 도롱뇽을 보호하기 위해 터널 공사를 방해하던 비구니의 속셈은 과연 무엇이던가? 환경보전의 가치를 명분으로 일의 경중과 완급을 무시한 채 국책사업을 한사코 반대하는 사람들의 속셈은 우리의 적을 이롭게 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던가? 냉철하게 가려보아야 한다. 우리의 지정학적 강점을 소중하게 지켜야 한다. 한국은 해양강국으로 나가야 한다. 

제주해군기지 조감도. [연합뉴스]
제주해군기지 조감도. [연합뉴스]

 

김 석 우 북한인권시민연합 이사장 (전 통일원 차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