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우 전 통일원 차관
‘한강의 기적’을 자랑하면서도 한국이 과연 선진사회인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우리 사회 특히 정치권에서 억지와 떼쓰기가 난무하기 때문이다. 선거의 공정성이 의심스럽고, 다수당이라는 근거로 관행을 무시하는 독선을 보면 더욱 그러하다.
역사적으로 대한민국은 대륙의 중국 옆에서 수많은 고난을 겪었어도, 굴하지 않고 극복해 왔다. 정체성을 유지했다는 데 자긍심을 가질만하다. 근대화에 앞섰던 일본의 침탈로 식민지가 되었지만, 국내외에서 독립운동의 불길은 꺼지지 않았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의 승리로 독립을 얻었으나, 동서 냉전이 격돌하는 최전선에서, 남과 북으로 분단되었다.
건국 대통령 이승만은 조선왕조 시대에 태어났음에도, 배재 학당에서 미국 선교사들의 영향으로 세계 역사와 국제정세의 흐름을 정확하게 읽을 수 있었다. 고종폐위 운동을 벌이다가 한성 감옥에서 5년 7개월간 복역하였다. 1917년 볼셰비키 혁명 6년 후인 1923년 ‘공산당 당부당(당부당)’ 논설에서 공산주의는 인간 본성에 비추어 실패할 거라고 예언하였다. 1941년 6월 ‘일본 내막기 (Japan Inside Out)’에서 일본의 침략을 경고하였다. 정말 그해 11월 9일 일본은 진주만을 기습하였다.
이승만의 독립투쟁 경력, 그리고 국내외적 지명도는 압도적이었다. 해방정국에서 남로당의 박헌영도 이승만을 '인민공화국' 주석으로 추대하려 했을 정도다. 1948년 대한민국의 헌법이 제정된 후 건국 대통령으로 추대되었다. 그가 주도해서 세운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기본으로 삼았다. 1950년 6.25남침으로 낙동강 전선에서 국가 운명이 백척간두에 섰는데도 그는 기본을 버리지 않고, 선거를 치렀다. 유엔 안보리 결의를 통해 22개국의 참전과 많은 나라들의 원조를 얻어냈다. 그 결과 대한민국은 스러지지 않았다.
전쟁의 폐허 위에서 온 국민이 피와 땀을 흘려 나라를 재건하였다. 후진 농업국이 이젠 6대 제조업 강국이 되었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제품이 없으면 전 세계 AI 산업이 유지되기 어려울 정도다. 자동차, 기계, 조선, 철강, 화학, 반도체 등 모든 분야에서 한국은 앞서가는 나라가 되었다. 파괴된 제조업을 다시 일으킨 ‘라인강의 기적’과 비교하면, 한강의 기적은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해 내는 어려운 과업이었다.
한국의 이러한 성취를 국제사회는 높게 평가한다. 많은 외국인이 선망한다. 유학생을 보내고 산업시찰단도 보낸다. K-컬처, K-팝을 열심히 따라 하려 한다. 명동이나 홍대 문화권에는 외국인 물결이 넘친다. 중소기업 단지에도 수많은 외국 근로자가 몰려들고 있다. 자기 나라보다 임금이 10배 가까운 한국에서 2, 3년 열심히 일해서 벌어가면 평생을 편안하게 지낼 수 있다. 우리가 개발연대에는 상상조차 못 하던 현상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국제사회가 존경하는 나라가 되었는가? 아직 미흡한 점이 많다. 품격을 충분히 갖추었다고 하긴 어렵다. 모든 게 완벽한 나라는 없지만, 벼락부자 같은 모습은 아닐까? 한국이 1996년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 29번째 회원국으로 정식 가입하고, 그 후 2009년에는 DAC(개발원조위원회)에 가입하여 원조해 주는 나라가 되었지만, 지위 격상에 걸맞은 품격을 보여주는지 냉정하게 보아야 한다.
프란시스 후쿠야마는 1995년 저서 ‘신뢰(Trust)’에서 미국과 일본을 신뢰 사회로 보고, 한국과 중국은 아직 아니라고 했다.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는 범죄 통계 비교에서 무고죄로 실형을 받은 한국인의 수가 인구 비례당 일본의 1,300배가 된다고 하였다. 고소·고발 사건이 인구 비례로 일본의 120배라고 지적하였다. 역동적 사회 탓이라고 하기에는 부끄러운 일이다.
압축 성장하는 과정에서 쉽게 무리를 범했다고 할 수 있다. 선진사회와 비교하면 ‘상식(common sense)’이 사회의 기본으로 정착하지 못한 셈이다. 북한의 3대 독재 사회와는 성격이 다르지만, 억지나 떼쓰기가 빈번하게 벌어진다.
평범한 한국 사람은 양심을 귀하게 여긴다. 규범과 질서를 지키려 한다. 우측보행이나 줄서기가 자연스러운 습관으로 발전한 건 많은 개도국과 비교해 훌륭한 모습이다. 금융실명제 실시 이후에는 거래가 투명하게 이루어진다. 예측 가능성이 높은 사회로 변하고 있다. 민간 경제계는 규범을 지켜가며 자유롭게 경쟁하여 전 세계적 모범으로 성공하였다. 한강 변 잔디밭에서 가족들과 함께 주말을 즐기는 시민들의 모습은 파리의 센 강변 풍경보다도 더 아름답다.
그러한 밝은 그림과는 대조적으로 가장 느리게 변하는 데가 바로 정치권이다. 거대 악의 그림자는 아직도 지워지지 않고 있다. 터무니없는 부정부패와 협잡을 계속 벌이고 있다. ‘바다이야기’나 대장동 비리가 바로 그것이다. 그들의 언어, 행태, 그리고 이전투구의 싸움에서 선량한 시민들은 염증을 느끼고 고개를 돌리려 한다. 고 이건희 회장이 한국의 정치를 4류라고 했던 지적은 과연 촌철살인(寸鐵殺人)이었다.
그 대표적인 진원지가 바로 586 운동권으로 보인다. 1980년대 소위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다면서 훈장처럼 우려먹는 사람들이다. 앞 세대가 피땀 흘려 세운 나라에서 온갖 혜택을 누리면서 걱정 없이 취업하던 세대다. 불행하게도 그때 반체제 학생운동의 핵심이 지금 정치권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심지어 밀실에서 김씨 정권에 충성을 맹세하고, 북한 정권의 독재와 인권유린에는 외면해 온 인사도 많다. 진정한 민주주의자라면 북한동포의 인권 참상을 못 본 척할 수 없다.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볼셰비키적 사고를 떨치지 못하고 있다. 거짓말을 떡 먹듯 한다. 정상적인 상식인이라면 부끄러워할 일도 서슴지 않는다.
언론에서 정치면의 비중이 크듯이 정치인의 언행이 사회 안에서 가장 큰 무게를 갖는다. 그 주역들의 언행은 그 사회의 미래를 향한 지표가 된다. 그들이 품격을 잃고 세속적인 욕심에 휘말리게 되면, 사회적 충격도 클 수밖에 없다. 오늘의 종북 좌파야말로 마치 흙탕물을 일으키는 미꾸라지와 같다. 그들의 경력을 살펴보면 잡범 수준의 전과가 찬란하다. 마치 도적이 권력을 휘두르는 격이 아닌가? 한국의 정치, 나아가 사회 전체가 상식을 벗어나서 질이 낮은 싸움에서 헤매는 근본 원인이 거기에 있다. 도적이 권력을 휘두르는 사회라면 정상이라고 할 수 없다. 우리 모두 깨어나야 한다.
![지난 15일 민주당 호남 합동연설회에 참석한 민주당 당권주자들. [연합뉴스]](https://cdn.pennmike.com/news/photo/202608/125823_171130_318.jpg)
김 석 우 북한인권시민연합 이사장(전 통일원 차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