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선 칼럼] 조희대 대법원장의 재제청이 오히려 위헌이다(26.09.01/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
페이지 정보
작성자 바른사회 댓글 0건본문
《조희대 대법원장의 재제청이 오히려 위헌이다》
- 제청은 끝났고, 국회의 동의 여부만 남았다 -

이호선 국민대 법대 교수ㆍ변호사
● 국회는 누가 열어 주지 않아도 열린다
헌법 제47조 제1항은 국회의 정기회를 매년 한 차례 집회하도록 하고, 국회법 제4조는 아예 "정기회는 매년 9월 1일에 집회한다"고 날짜까지 못 박아 놓았다. 소집권자가 없다. 그냥 자동으로 모이게 해 놓았다.
왜 이렇게 해 두었을까. 여기에는 역사가 가르쳐 준 교훈이 있다.
프랑스의 삼부회는 1614년 이후 175년 동안 소집되지 않았다. 재정과 조세의 위기가 왕권만으로 해결될 수 없게 되자 루이 16세는 1789년에야 삼부회를 소집했고, 그 삼부회는 곧 국민의회로 바뀌어 프랑스혁명의 문을 열었다. 혁명의 원인은 여럿이지만, 175년간 대표기관이 멈춰 있는 동안 쌓인 불만이 크게 작용했다고 보아야 한다.
러시아도 다르지 않다. 1905년 혁명 뒤 두마가 만들어졌으나 황제가 거듭 해산하고 그 권한을 제약했다. 정치적 갈등을 의회 안에서 풀 통로가 자리 잡지 못했고, 그것이 소비에트 혁명으로 넘어가는 단초가 되었다.
그래서 근대 입헌주의는 의회의 집회와 작동을 다른 권력자의 선의에 맡기지 않는다. 대표기관에 권한을 주어 놓고도 다른 권력이 그 기관을 작동하지 못하게 할 수 있다면, 그 권한은 종이 위의 권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누군가 문을 열어 주어야 비로소 움직이는 국회에서는 국회의 기능을 기대할 수 없다.
법률 제정에도 같은 장치가 있다. 국회에서 의결된 법률안에 이의가 있으면 대통령은 헌법이 정한 기간 안에 재의를 요구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 방법으로 국회의 의결을 무력화할 수는 없다. 헌법 제53조 제5항은 대통령이 법률안을 이송받은 뒤 15일 이내에 공포도 재의요구도 하지 않으면 그 법률안이 법률로서 확정된다고 규정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그렇게 확정된 법률을 대통령이 다시 5일 이내에 공포하지 않으면 제6항에 따라 국회의장이 공포한다. 대통령이 두 번 '배 째라'로 나와도 헌법절차는 멈추지 않는다.
원리는 간단하다. 한 헌법기관의 부작위 때문에 이미 적법하게 이루어진 다른 헌법기관의 권한행사가 없었던 일이 되고, 그다음 헌법절차까지 마비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대법관 제청 문제도 이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 제청은 이미 끝났다
헌법 제104조 제2항은 이렇게 규정한다.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
순서는 명확하다. 대법원장의 제청, 국회의 동의, 대통령의 임명이다.
○ 대법원장의 제청 → 국회의 동의 → 대통령의 임명
대법원장이 제청하면 대통령이 이를 승인한 뒤 국회에 보내도록 되어 있지 않다. 헌법에는 대통령의 '제청 승인'도 '제청 반려'도 없다. 앞선 글에서 지적했듯이, 제청과 국회의 동의 사이에서 대통령이 하는 송부는 별도의 헌법적 심사단계가 아니다.
그렇다면 조희대 대법원장이 손봉기 후보자를 적법하게 제청한 순간 대법원장의 헌법상 행위는 완결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대통령이 이를 '반려'했다고 해서 이미 이루어진 제청이 소멸하는 것도 아니다. 반려할 권한이 없다면 반려에 소멸의 효력을 인정할 근거도 없다.
지금은 새로운 제청을 기다리는 단계가 아니다. 제청은 이미 끝났다. 헌법상 남아 있는 것은 국회의 동의 여부에 관한 판단뿐이다.
● '반려'라는 말로 헌법을 바꿀 수는 없다
이번 사안에서 아무렇지 않게 쓰이고 있는 '반려' 또는 '거부'라는 말부터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반려에는 되돌려 보낼 권한이 있다는 전제가 숨어 있다. 그 말을 받아들이는 순간 헌법이 정한 절차가 달라진다.
○ 대법원장의 제청 → 대통령의 승인 또는 반려 → 국회의 동의 → 대통령의 임명
헌법에 없는 단계 하나가 중간에 끼어든다. 여기에 반려의 효력까지 인정하여 대법원장이 다른 사람을 다시 제청해야 한다고 하면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대통령에게 이미 이루어진 대법원장의 제청을 소멸시키는 권한까지 생긴다. 그런 권한 역시 헌법 어디에도 없다.
용어는 그저 용어가 아니다. 헌법에 없는 권한은 대개 헌법에 없는 말을 통해 들어온다.
● 재제청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재제청하는 것이 문제다
질문을 바꿔야 한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왜 다시 제청하지 않느냐가 아니라, 이미 유효한 제청이 있는데 무엇을 근거로 다시 제청할 수 있느냐가 물어야 할 질문이다.
대법원장이 대통령의 '반려'를 받아들여 다른 후보자를 제청한다면, 그것은 단순한 인사절차의 재개가 아니다. 대법원장 스스로 헌법에 없는 대통령의 반려권을 인정하고, 그 반려에 기존 제청을 소멸시키는 효력까지 부여하는 것이 된다.
헌법이 대법원장에게 독립적으로 부여한 제청권을 대통령의 승인 아래 놓는 결과이기도 하다. 한 번 그렇게 하면 선례가 된다. 다음 대법원장은 제청 전에 대통령의 뜻을 먼저 확인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재제청하지 않는 것이 위헌인지를 물을 일이 아니다. 이미 완결된 제청을 대통령의 요구 때문에 없었던 것으로 만들고 다시 제청하는 행위에 위헌 문제가 생긴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할 일은 이미 했다. 제청은 끝났다. 거기에 무엇을 더한다면 그것이 위헌이다.
● 이제 남은 것은 국회의 동의 여부다
대법원장의 제청이 적법하게 이루어졌고 그것이 유효하게 존속하고 있다면, 헌법상 절차는 이미 국회가 동의 여부를 판단해야 할 단계에 들어가 있다.
물론 대통령이 임명동의안을 보내지 않으면 국회는 후보자를 검증할 수도, 찬성할 수도, 반대할 수도 없다. 현실적으로 동의절차를 정상적으로 진행하기 어렵다. 그러나 대통령의 부작위 때문에 국회의 헌법상 동의권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대법원장의 임명제청은 대통령이 이송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청와대 서랍에 갇혀 있을 성질의 것이 아니다. 대통령이 보내지 않기로 한 이상, 그 제청은 국회에 도달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소집권자의 침묵에도 정기국회가 열리고 대통령의 침묵에도 법률안이 법률로 확정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헌법기관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도록 하는 원리가 그렇다.
● 야당이라도 "이제 국회의 차례"라고 선언해야 한다
여당이 대통령과 다른 목소리로 이 문제를 제기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그렇다면 야당이라도 나서야 한다. 대통령의 행태를 비판하는 데 그칠 일이 아니다.
"대법원장의 제청은 이미 유효하게 이루어졌다. 헌법상 제청단계는 끝났다. 이제 국회가 동의 여부를 판단할 차례다." 이렇게 공식적으로 선언해야 한다.
국회 차원의 결의안 추진이든, 의사절차상의 문제 제기든, 권한쟁의심판이든 가능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국민에게 물어야 한다. 대법원장이 적법하게 제청했는데 대통령이 서류를 보내지 않았다는 이유 하나로 국회의 동의권까지 행사할 수 없는 것이, 과연 헌법이 예정한 결과인가.
의회의 역사가 남긴 원리이자 우리 헌법의 바탕에 깔린 원리는 분명하다. 앞 단계의 헌법기관이 자신의 책무를 마쳤는데 다른 권력이 중간에 끼어들어 다음 단계의 작동을 마비시키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법원장은 제청했다. 그 제청은 대통령의 반려로 소멸하지 않았다. 제청은 끝났고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다수 여당이 국회의 권한을 스스로 포기했더라도 야당까지 그럴 일은 아니다. 의석은 적어도 입과 법리는 살아 있지 않은가. ■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