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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선 칼럼] 손봉기 대법관 후보자에게 드리는 응원과 당부(26.09.22/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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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바른사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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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봉기 대법관 후보자에게 드리는 응원과 당부》

2026-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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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선 국민대 법대 교수ㆍ변호사


- 마버리(Marbury)가 없었다면 마버리 판결(Marbury v. Madison)도 없었다 -​


조희대 대법원장의 재제청 거부는 지극히 당연한 헌법합치적 판단일 뿐 아니라, 헌법 수호의 결기를 보여준 최고법원 수장다운 결단이다. 여당과 청와대의 적반하장식 억지는 예상했던 일이라 놀랍지도 않다. ​


다만 보도대로 대통령이 총리에게 '재재제청' 요구의 총대를 메게 하여 대법원을 압박한다면, 그 후과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전개될 것이다.​


그런데 이 사태의 한가운데 있으면서 정작 주목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손봉기 후보자다. 이런 국면에서 가장 먼저 흔들리는 자리가 바로 그 자리다. "본인이 물러나면 모두가 편해진다"는 말이 나올 것이다. 법원 안팎에서, 때로는 선의의 얼굴로 그렇게 권할 것이다. 손봉기 후보자가 그 악마의 속삭임에 넘어가지 않기를 바란다.​


● 1803년, 국새까지 찍힌 임명장을 받지 못한 판사​


현대적 의미의 위헌법률심사에 첫 문을 연 것은 1803년 미국 연방대법원의 마버리 대 매디슨(Marbury v. Madison) 판결이다. 그런데 이 판결은 헌법 조문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소신에서 나왔다.​


1801년 존 애덤스(John Adams) 대통령은 퇴임 직전 윌리엄 마버리(William Marbury)를 치안판사로 임명했다. 상원의 인준을 받았고, 임명장에는 대통령의 서명과 국새까지 찍혔다. 남은 것은 임명장을 건네주는 일뿐이었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었고, 새 국무장관 매디슨(James Madison)은 제퍼슨(Thomas Jefferson) 대통령의 뜻에 따라 임명장을 내주지 않았다. 임명장을 쥔 채 전달을 거부한 것이다.​


그러나 마버리는 포기하지 않았다. 현직 국무장관을 상대로 연방대법원에 직무집행명령을 청구했다. 이길 가능성은 크지 않았다. 신정부는 대법원을 노골적으로 적대했고, 대법원이 명령을 내린들 정부가 따를지조차 불투명했다. 아마 주변에서 그를 말렸을 것이다. 치안판사 자리 하나 때문에 정권과 싸울 일이냐고.



● 마버리는 졌다. 그러나 헌법이 이겼다​


마셜(John Marshall) 대법원장은 마버리에게 임명장을 받을 권리가 있고 정부가 이를 거부한 것은 위법이라고 선언했다. 그러면서도 대법원은 그 명령을 발부할 수 없다고 했다. 대법원에 그런 관할을 부여한 법률 조항이 헌법에 어긋나 무효라는 것이었다.

마버리는 끝내 임명장을 전달 받지 못했다. 그러나 그 판결로 "무엇이 법인지 말하는 것은 사법부의 영역이자 의무"라는 원칙이 세워졌고, 법원이 헌법을 근거로 다른 권력의 행위를 심사하는 제도가 태어났다.​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마버리가 청구하지 않았다면 사건은 없었다. 사건이 없으면 판결도 없다. 법원은 스스로 사건을 만들지 못한다. 누군가 자기 권리를 주장하며 문을 두드려야 비로소 헌법이 말할 기회를 얻는다. 마버리의 적극적 주장이 없었다면 위헌법률심사도 없었다. 헌법의 원리는 조문 속에서 저절로 작동하지 않는다. 자기 자리를 지킨 한 사람을 통해 작동한다.


● 후보자가 물러나는 순간 헌법문제는 증발한다


이번 사안도 마찬가지다. 청와대의 '반려'가 헌법에 없는 권한이라는 점, 대법원장의 제청이 유효하게 존속한다는 점, 국회의 동의권이 원천 차단되었다는 점은 모두 손봉기 후보자에 대한 제청이 살아 있다는 사실 위에 서 있다.​


후보자가 사퇴하면 어떻게 되는가.​


제청은 대상을 잃는다. 대통령의 부작위를 다툴 권한쟁의심판은 심판의 이익을 잃는다. 국회의 동의권 침해도 다툴 대상이 없어진다. 헌법에 없는 반려권은 아무런 심판도 받지 않은 채 사실상의 선례로 남는다. 다음 대통령에게, 입맛에 맞는 후보자가 올 때까지 반려해도 된다는 전례를 만들어 주는 셈이다.​


따라서 후보자의 사퇴는 개인의 겸양이 아니다. 이 사건의 헌법적 쟁점과 선례 전체를 소멸시키는 행위다. 청와대와 여당이 가장 바라는 결말이기도 하다. 반려권을 행사했다는 정치적 부담도,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받을 위험도 없이 원하는 결과를 얻기 때문이다.

​


● 사퇴 권유는 대개 선의의 얼굴로 온다​


후보자에게 닥쳐올 유무형의 압력을 예상해 본다.​


"법원을 위해 결단하라." "개인이 버텨서 될 일이 아니다." "국회 동의도 못 받을 자리에 왜 매달리느냐." "후배들이 힘들다."


이런 취지의 언행으로 후보자를 압박한다면, 그것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일이며 대한민국 사법 독립과 헌법 시스템을 망가뜨리는 패역행위다.


이 사태에서 따져야 할 것은 후보자가 왜 물러나지 않느냐가 아니라, 대법원장이 적법하게 제청한 사람이 무엇을 근거로 물러나야 하느냐다. 후보자는 임명을 구걸하는 사람이 아니다. 헌법 제104조 제2항이 정한 절차에 따라 제청된 사람이다. 그 절차를 중간에 막은 것은 후보자가 아니라 대통령이다. 절차를 막은 쪽이 아니라 절차에 따라 제청된 쪽이 물러나야 한다면, 그것은 헌법이 아니라 정치적 폭력이 정한 결론이다.​


마버리도 치안판사 자리가 탐나서 싸운 것이 아니다. 자신에게 적법하게 부여된 지위를 정부가 멋대로 거두어갈 수 있는지를 물은 것이다.

​


● "버티는 것이 사법부의 정치화"라는 반론에 대하여​


일각에서는 후보자가 자리를 지키는 것 자체가 대법관 후보자를 정치적 다툼의 중심에 세우는 일이고, 그것이 곧 사법부의 정치화라고 말할 것이다. 어용 판사나 일부 법학자들이 전문가랍시고 한마디씩 거들 수도 있다. 판사는 다투는 사람이 아니라 판단하는 사람인데, 자기 임명을 놓고 대통령과 맞서는 모양새가 과연 대법관에 어울리느냐는 것이다. 그럴듯하게 들린다. 그러나 원인과 결과를 뒤집은 말이다.​


이 사건을 정치의 한복판으로 끌고 온 것은 후보자가 아니다. 후보자는 추천위원회의 추천과 대법원장의 제청을 받았을 뿐, 헌법이 정한 절차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않았다. 그 절차를 중간에서 끊고 다른 사람을 내놓으라고 요구한 것은 청와대다. 정치화가 있다면 그 지점에서 시작된 것이다. 절차에 따라 제청된 사람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것은 정치화가 아니라 헌법수호다.



마버리 사건도 다르지 않았다. 제퍼슨 정부는 마버리의 청구를 연방주의자들의 정치공세로 규정하고, 대법원의 개입 자체를 정치 개입이라고 몰아붙였다. 마셜은 그 말에 밀려 사건을 회피하지 않았다. 정치적 다툼의 외양을 띤 사건이라고 해서 그 안의 헌법문제까지 정치적인 것은 아니다. 헌법문제를 정치문제로 부르는 것이야말로 헌법의 판단을 피하려는 쪽이 즐겨 쓰는 수법이다.



후보자가 물러난다고 논란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논란은 사라지지 않고 결론만 정해진다. 대통령이 대법원장의 제청을 거둘 수 있다는 결론이, 헌법재판소의 심판도 국회의 판단도 거치지 않은 채 굳어진다. 그리고 다음 후보자들은 제청 전에 청와대의 의중부터 살피게 된다. 그것이 진짜 정치화다.​


자격 문제도 마찬가지다. 후보자의 적격 여부는 얼마든지 따질 수 있지만, 그것을 따지라고 헌법이 마련해 둔 자리가 국회의 인사청문과 동의절차다. 그 절차를 봉쇄해 놓고 자격을 이유로 사퇴를 요구하는 것은 검증 없이 결론을 내리겠다는 뜻이다. 검증받을 기회를 박탈당한 사람에게 검증을 이유로 물러나라고 할 수는 없다.


후보자에게 요구되는 것은 판사답게 침묵하되, 헌법이 정한 자기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는 것이다. 이 절차가 헌법에 맞는지에 대한 판단은 헌법재판소와 국회에 맡기고 기다리는 것이 가장 판사다운 태도다. 스스로 물러나는 것은 겸양이 아니라 그 판단의 기회를 헌법기관들로부터 빼앗는 일이다.


정치화를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되묻고 싶다. 제청된 후보자가 자리를 지키는 것과, 헌법에 없는 반려권이 아무런 심판 없이 선례로 남는 것 가운데, 사법부를 더 정치에 가깝게 만드는 것은 어느 쪽인가.

​

● 자리를 지키는 것이 사법부 독립을 지키는 것이다

​


사법부 독립은 대법원장 한 사람만으로 지켜지지 않는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본인이 할 수 있는 일을 다했다. 이제 손봉기 후보자가 뒷받침해야 한다. 이번에 후보자가 물러나면 앞으로 대법관 후보자가 될 모든 판사에게 학습효과가 생긴다. 정치적 편향을 드러내는 것이 확실한 출세의 길이라는 것을.

​


대법원장의 제청보다 대통령, 사실상 정파의 뜻이 먼저라는 것을 아는 판사들이 어떻게 행동할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그렇잖아도 일부 판사들의 정치적 편향과 무리한 판결로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적지 않은 터에, 대한민국 대법관은 대통령의 '픽'이라는 인식이 국민 사이에 보편화되면 사법부는 그것으로 끝이다. 사법부 독립은커녕, 독립할 사법부가 남아 있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손봉기 후보자에게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법조인의 한 사람으로서 간절히 부탁한다. 후보자가 할 일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사퇴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고, 헌법이 정한 절차가 끝날 때까지 그 자리에 있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이 사건은 살아 있고, 헌법재판소가 답해야 할 질문도 살아 있다.​


마버리는 임명장을 받지 못했지만 헌법을 남겼다. 손봉기 후보자가 끝내 임명되지 못하더라도, 대통령이 대법원장의 제청을 서랍에 가둘 수 없다는 원리는 남을 수 있다. 그 원리를 남기는 사람은 국회도 헌법재판소도 아니다. 자기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는 후보자 한 사람이다. 버텨야 한다. 그것이 사명이다. 설령 대법관이 되지 못하더라도, 손봉기 후보자는 그 어떤 판결문보다 무거운 판결을 남길 수 있다. 좋든 싫든, 선택의 여지가 없는 역사의 자리에 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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