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근 칼럼] 1964년 골드워터 참패를 딛고 보수를 부활시킨 ‘자유 이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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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워터, 1964년 美대선 참패했지만...풀뿌리 보수주의 탄생에 기여
골드워터의 '샤론 선언문', 젊은 세대에 보수주의 심어...레이건 대통령 배출의 밑거름
美보수 부활의 힘은 '자유 이념'...국민의힘엔 있나

1964년 미국 대선(大選)에서 공화당 후보 배리 골드워터는 민주당 후보 린든 존슨 대통령에게 참패했다. 골드워터는 일반투표의 38%를 얻는 데 그쳤고, 애리조나 등 6개 주에서만 승리했다. 확보한 선거인단은 52명으로, 486명을 얻은 민주당의 존슨 대통령에게 크게 패했다. 이 정도면 말 그대로 완패(land slide)다.
당시 언론은 골드워터는 물론이고 공화당이 입은 상처가 너무 커서 재기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1964년 대선은 미국 보수주의 운동의 기폭제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64년에 골드워터가 보수주의를 들고 나서지 않았더라면 즉 씨를 뿌리지 않았다면 그후 로널드 레이건과 조지 부시 부자(父子)가 대통령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반공주의(反共主義)를 주창했고, 노조개혁을 주장해서 의회 내의 보수주의자로 인식되었다. 1960년에는 그의 정치적 신념과 보수주의에 대한 견해를 담은 ‘보수주의자의 양심’(Conscience of a Conservative)을 펴냈는데 베스트 셀러가 됐다. 그는 자신의 저술을 통해 ‘개인의 자유, 작은 정부, 자유시장 경제, 강력한 국방’을 주창했다. 하지만 그는 1960년 공화당 내 경선에서 닉슨에 패배했다.
그는 “공화당을 제대로 세우기 위해서는 할 일이 믾다”는 요지의 경선 패배 연설을 했다. 그리고 그 날 저녁 윌리엄 버클리에게 젊은 보수주의자들을 조직해 줄 것을 주문한다. 그는 젊은 세대를 기반으로 한 풀뿌리 보수주의 운동을 주창했다.
O 적대적 언론 플레이에 희생된 골드워터
1961년 여름 타임(TIME)지는 골드워터에게 ‘다음 대선에 출마할 의향이 없냐’고 물었고, 그는 “나는 계획도, 조직도 야심도 없다”고 말했다. 의외의 답변이었다. 그러자 ‘당내 보수파인 골드워터를 차기 후보로 내세우자’는 주문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재선(再選)을 준비하던 케네디 대통령의 측근들은 ‘민주당은 록펠러 지사를 상대하는 것이 가장 두렵다’는 말을 흘려서 록펠러의 출마를 부추겼다. 1962년 말 갤럽은 차기 공화당 대선 후보 지지도가 ‘록펠러 41%, 닉슨 21%, 롬니 15%, 골드워터 4%’라고 발표했다. 무언가 짜맞춘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당시 록펠러와 골드워터는 공화당 지지자들 사이에서 각각 ‘43%와 26%’의 지지도를 얻고 있었기 때문이다. 1963년 5월 이혼 상태에 있던 록펠러가 금방 이혼한 20년 연하의 여인과 결혼을 하자 록펠러의 지지도는 29%로 급락했고 반면 골드워터는 40%로 올라섰다.
언론은 이때부터 골드워터가 1964년 대선에서 케네디에 대한 대항마가 될 것이라고 쓰기 시작했고, 1963년 11월 초 골드워터는 대선 출마를 공식화했다. 하지만 1963년 11월22일 케네디가 오스왈드에게 암살되자 상황은 급변했다. 케네디 암살이 극우 세력에 의한 것일 수 있다는 루머가 돌자 골드워터의 지지도는 급락했다.
록펠러는 북동부에 근거를 둔 진보파 공화당원의 지지를 받고 있었으며 뉴딜 등 민주당의 정책을 그대로 답습해 오고 있었다. 그는 공화당원이지만 내면은 민주당원과 다를 바 없었다. 민주당은 암묵적으로 록펠러를 지지했다.
불행하게도 골드워터는 ‘대중과의 소통능력’이 매끄럽지 못했다. 민주당에 기울어진 당시 언론은 골드워터에게 불리한 기사를 쏟아냈다. 1964년이 되어 뉴햄프셔 예비선거를 앞두고 골드워터는 ‘노년층에 대한 의료보장제도는 가정을 약화시키기 때문에 이를 개혁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연방정부 지출을 줄이고 베트남 공산세력에 대한 전쟁을 확대하겠다’고 선언했다.
‘사회 안전망으로 시작한 사회보장제도에 문제가 많다’는 의견을 피력했는데, 미디어는 ‘골드워터가 사회보장제도를 없앨 것’이란 추측성 기사를 썼다. 골드워터가 ‘나토군 총사령관이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는데, 언론은 ‘그가 모든 지휘관이 핵무기 사용 권한을 가져야 한다’고 침소봉대했다. 미디어는 그를 총잡이 카우보이로 묘사했다. 동부 언론은 ‘골드워터가 반공(反共) 십자군 전쟁을 일으킬 것이며, 그에게선 파시즘의 냄새가 난다’고 까지 몰고갔다.
많은 사람들은 당시 골드워터가 월맹에 핵포탄을 투하하고, 사람들을 게으르게 만드는 사회보장제도를 없애자고 주장해서 참패했다고 믿고 있지만 골드워터는 그런 말을 입에 담은 적이 없다. 미디어가 비틀은 바람에 그렇게 알려졌던 것이다.
O 골드워터의 존슨 대통령과의 1대1 TV 토론 좌절
여론전에서 존슨 후보에 밀리자, 골드워터는 존슨 대통령과의 1대 1 TV 토론을 제안한다. 당시 군소후보가 많았기 때문에 ‘닉슨과 케네디’의 경우와 같이 양당 후보가 TV 토론을 하기 위해선 ‘모든 후보에 대해 동등한 대우를 요구하는 연방통신법 규정에 대해 의회가 예외를 인정하는 결의’를 해야 한다. 그러나 존슨의 민주당은 예외를 인정하기를 거부했다. 골드워터는 대중에 대한 소통력은 부족했지만 1대 1 TV 토론에서는 존슨에 대해 비교우위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골드워터에게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골드워터는 TV토론이 좌절되자 그는 지루한 유세를 통해 자신의 경제철학과 정책을 대중에 호소했다. 하지만 효과적으로 대중을 설득하지는 못했다.
골드워터가 보수주의 깃발을 들기 전까지 공화당의 중심은 필라델피아·뉴욕 등 동북부였다. 후일 트럼프 대통령 후보가 ‘워싱톤 기득권 세력’(establishment)으로 몰아붙인 정언(政言) 유착이 그것이다. 당시 공화당은 민주당과 차별성을 갖지 못했다. 골드워터가 깃발을 들고 “작은 정부, 감세, 도덕과 가족의 가치. 반공주의”를 외침으로써 ‘새로운 공화당’이 태동한 것이다.
그는 선거운동과정에서 ‘집권하면 전면적 감세(減稅)를 통해 경제를 일으키겠다’고 약속했고. 적자투성이인 ‘테네시 계곡 개발공사(TVA)’를 민영화를 하겠다고 했다. 시대를 앞서가는,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정책을 제시했음에도 존슨에 패한 것은 크게 2가지 이유에서다. ‘대중적인 지지 부족’과 ‘캠페인 전략’ 부재가 그것이다.
O 골드워터가 뿌린 보수주의 맹아(萌芽)
골드워터는 대선에서 존슨에 대패했지만 젊은 세대에 보수주의의 맹아를 뿌렸다. 보수주의 운동에 젊은 지지자 50만 명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150만 명이 소액헌금을 한 골드워터의 선거운동은 미국 보수정치에 새 이정표를 세웠다.
그 기저에는 ‘샤론 선언문(Sharon Statement)’이 있었다. 1960년 9월 11일부터 12일까지 미국 일리노이 주의 빌라 빌라노바(Villa Villanova)에서 열린 미국 보수주의자 대회에서 채택된 선언문으로 미국 보수주의 운동의 핵심 가치와 원칙을 ‘미려한 문체로 적확(的確)하게’ 적고 있다. 샤론 선언문에 기초해 ‘자유를 위한 미국청년'들(Young Americans for Freedom, YAF)이 조직되었다.
샤론 선언문은 “도덕적·정치적 위기의 시기에 미국의 젊은이들은, 다음의 몇 가지 영구불변한 진리들을 재확언(再確言)해야 할 시대적 책임을 진다”고 되어 있다. 구체적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인간 상위의 초월적 가치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신(神)이 부여하고 그 어떤 인위적 강제력으로도 구속할 수 없는 인간의 자유의지가 있음을 믿는다. 그리고 그 자유는 양도할 수 없다는 것과 정치적 자유는 경제적 자유 없이 오래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믿는다.
2) 정부의 목적은 내부 질서와 국방, 그리고 정의(正義)의 집행을 통해 이 자유를 지키는 것임을 믿는다. 정부가 이 최소한의 기능 이상의 역할을 감행하려 할 때, 질서와 자유를 감소시키는 경향을 가진 권력을 축적하게 된다는 것을 믿는다.
3) 미국의 헌법은, 정부가 그 적법한 기능을 다할 수 있도록 권한을 줌과 동시에 권력의 집중과 남용을 억제하기 위한 장치를 둔다.
4) 시장경제는 자유로운 개인의 요구와 입헌(立憲)정치에 가장 적합한 경제체계라는 것과 인간 필요를 가장 잘 충족하는 시스템이라는 것을 믿는다. 그래서 정부가 시장경제의 원리에 인위적으로 개입해 가령 정부가 어느 한 사람의 것을 뺏어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경우, 그것은 첫 번째 사람의 인센티브와 두 번째 사람의 정직성, 그리고 두 사람 모두의 도덕적 자율(moral autonomy)을 감소시킨다는 것을 믿는다.
5) 미국의 국가주권이 보장되어야만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것과 ’자유의 적‘(敵)으로부터 스스로의 권리를 수호하려는 국민들이 있어야 자유를 유지할 수 있음을 믿는다.
6) 자유에 대한 가장 큰 위협은 국제 공산주의 세력이라는 것을 믿는다.
7) 미국의 모든 외교 정책은 ‘그것이 미국에 정당한 이익을 제공하는가’라는 기준으로 평가되어야 한다는 것을 믿는다.
이 같은 완벽에 가까운 샤론 선언문이 ‘1960년에 만들어졌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이다. 골드워터는 비록 존슨에게 패배했지만 그가 뿌린 보수주의의 씨는 일정한 시차를 두고 레이건이라는 걸출한 대통령을 배출시켰다.
정치 시사평론가 조지 윌(George Will)은 “골드워터는 1964년 대선에서 승리했다. 단지 표를 세는 데 16년이 걸렸을 뿐이다”라고 위트 있게 논평했다. 1964년 골드워터 참패를 딛고 보수를 부활시킨 것은 ‘자유 이념’의 힘이다. 국힘당의 정강정책에 ‘자유라는 이념과 가치’가 조금이라도 담겨있는지 눈을 부릅뜨고 볼 일이다. 그러니 518 정신을 헌법전문에 넣느니마니 하는 주장이 나오는 것이다. 자유주의 사상의 무게가 기우는 방향으로 자유와 번영이 깃든다. 인류의 등불, 미제스의 말이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
2024. 04. 26.
출처 : 펜앤드마이크(https://www.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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