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근 칼럼] ‘평등주의에 포획된 약탈적 상속과세 개편’ 그 자체가 증시부양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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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바른사회 댓글 0건본문
노무현 정부, '부의 세습' 악으로 보고 상속세 강화했지만...'동등한 출발'에 기여 못해
과도한 상속세는 근로 의지 해치고 성장 잠재력 훼손할 뿐...'제 등에 발등 찍기'
現 상속세, '유산취득세'로 전환하거나 부과 연기 등 반드시 개선해야...가장 효과적인 증시부양책 될 것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ce)는 우리의 신념 간에 또는 신념과 실제로 보이는 것 간에 불일치나 비일관성이 존재할 때 느끼는 불편함이다. 사람들은 이 불일치를 제거하기 위해 자신의 인지를 변화시켜 조화를 유지하려 한다. ‘자기합리화’가 그 방편이다. 즉 자기합리화를 통해 인지부조화를 해소하려 한다.
모든 사람들은 ‘국가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세금을 내야 한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나는 세금을 내기 싫다. 따라서 ‘여유 있는 소수의 사람’이 세금을 내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을 바꾼다. 상속세는 말 그대로 아무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부모 세대로부터 이전받는 소득과 자산(asset)에 대해 과세하는 것이므로 국가가 가혹하게 걷어도 된다고 생각한다. 상속세를 나와 무관한 세금으로 치부하였기에, 상속세의 불합리성이 잔존해왔다.
O ‘동등한 출발’의 평등주의 명분에 포획된 상속과세
상속세는 좌파 노무현 정부 때 획기적으로 강화됐다. 당시 상속세 강화에는 ‘부의 세대 간 세습’ 차단이라는 정언적(定言的) 명분이 있었다. 부모 잘 만난 이유만으로 앞서 가는 것이 옳으냐는 것이다. 평등주의가 만연된 한국적 현실에서 상속과세는 ‘로빈 후드’식의 ‘공평을 위한 과세’로 인식되었다. 상속세는 상속이라는 악(惡)을 응징하는 ‘도덕적 선’으로 등치(等値)되면서 ‘성역화’ 되었다.
상속된 소득은 땀 흘려 번 것이 아닌, 일종의 불로소득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높은 세율이 적용돼야 한다고 믿었다. 상속세는 ‘출발선(出發線) 상의 동등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즉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세금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면 우리나라에서 상속세는 사회구성원의 ‘동등한 출발’을 위해 얼마나 기여했나? 2012년~2020년 국세 대비 ‘상속·증여세’ 비중은 ‘0.8~1.2%’에 지나지 않았다. 2020년 10월 이건희 회장의 별세로 인해 2021년만 이례적으로 그 비중이 4.7%로 높아졌다. 하지만 국세대비 1.2%의 상속세가 ‘동등한 출발을 위한 지렛대’가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상속세 강화라는 유량(flow)의 변화로 저량(sock) 변수인 ‘부의 집중’을 의미 있는 수준으로 낮출 수는 없을 것이다.
주변에서 ‘가업(家業)을 잇는다’는 말을 한다. 가업을 잇는다는 것은 미담(美談)이다. 그렇다면 재벌의 경영권 승계는 ‘가업을 잇는 것’과 어떻게 다른가? 양자 간에는 본질적 차이가 없다. 다르다면 ‘작은 것’의 대물림과 ‘큰 것’의 대물림의 차이일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작은 것’의 대물림은 미담으로, ‘큰 것’의 대물림은 악(惡)한 것으로 ‘경계의 대상’이 된다. ‘이중 잣대’를 대서는 안 된다.
상속세는 각도를 달리하면 가장 잔인한 사망세(death tax)이면서 사망벌칙금(death penalty)이다. 그리고 조세측면에서 볼 때 상속세는 ‘2중 과세’이다. 피상속인(사망자)이 물려줄 부를 축적하는 단계에서 이미 세금을 납부했기 때문에 사후에 다시 과세할 경우 ‘이중 과세’가 된다.
상속할증세율을 포함해 최고 60%에 이르는 현행 상속세제를 고집하면 결국에는 국가가 ‘상속인’이 된다. 손 하나 안 대고 기업을 국유화시키는 셈이다. ‘자연인의 수명’은 유한하지만 ‘기업의 수명’은 무한하다. 소비자와 투자자의 선택을 받아 ‘계속기업’(going concern)의 지위를 이어온 기업은 경쟁력을 유지하는 한, ‘자연인의 사망’을 건너뛰어 ‘계속기업’으로 발전할 수 있어야 한다. 높은 상속세율을 부과해 ‘성공한 기업’의 경영권 승계를 사실상 금지하는 것은 경제효율을 낮추고 부를 파괴하는 국가의 ‘제도적 폭력’이다.
생각의 쏠림을 경계해야 한다.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정책이라고 여겨질수록 내재된 ‘숨은 비용’에 유의해야 한다. 상속세를 내고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면 누구도 열심히 일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상속세에 수반된 ‘숨은 비용’은 장기적 관점에서의 경제의 효율성 상실과 활력 저하 그리고 성장잠재력 훼손이다.
O 상속세가 ‘발등을 찍은 도끼’임을 뒤늦게 인식
‘상속세는 재벌의 일로 나와 무관하다’는 자기합리화가 최근 깨지고 있다. 최근 삼성그룹의 주가가 맥을 못 추는 이유 중의 하나가 “상속세를 내기 위해 고(故)이건희 일가가 계열사 주식을 대거 내다 팔기 때문이라는 것”이 알려 지면서부터이다.
고(故) 이건희 선대회장 별세 이후 약 12조원에 달하는 상속세를 내고 있는 삼성가(家)의 세 모녀가 상속세 납부를 위해 최근 1년 6개월 사이 3조3000억원가량의 주식을 처분했더. 이는 같은 기간 국내 대기업 오너 일가의 전체 주식 매도 규모의 66%를 웃도는 규모다. 상속세가 자신의 발등을 찍는 도끼로 돌변했음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O 상속세의 ‘유산취득세’로의 전환
생각만 바꾸면 상속세 개선의 여지는 넓다. ‘유산세가 아닌 유산취득세’로의 전환을 시도해야 한다. 유산세는 상속 재산 전체를 과표(과세기준)로 삼지만, 유산취득세는 개인별 상속받는 재산을 과표로 삼아 전체적으로 세금 부담이 줄어든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유산세 방식인 나라는 우리나라와 미국과 영국 등 4개국이고 나머지는 유산취득세 방식이거나 상속세가 없다. 최상목 부총리는 조세 공평성과 국제적 추세 등을 감안해 상속세를 유산취득세 방식으로 바꾸는 걸 추진하겠다고 한다. 이는 바른 방향으로 적극환영한다.
두 번째 개선방안은 “상속인이 부동산, 주식 등을 상속받더라도 이를 현금화하지 않고 생산과정에 다시 투입하는 경우 상속세 부과”를 연기하는 것이다. 기업을 접을 경우 상속세를 정산하는 것이다. ‘상속과세의 자본이득과세로의 전환’이 그것이다.
대한민국의 증시는 빈사상태이다. 코스피 지수는 수년째 2600~2800에서 횡보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개미들은 파산 직전이다. 정부는 ‘밸류업’(value up)을 외치지만 증시는 꿈쩍도 안한다.
맨큐 경제학에 나오은 ‘경제 10대 원리’ 중 2번째가 “인간은 모두 유인(incentive)에 반응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부가가치는 기업에 의해 만들어진다. 소비자와 투자자의 선택을 받아 경쟁력을 유지한 기업은 ‘자연인의 사망’을 건너뛰어 ‘계속기업’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 상속세제 개편 그 자체가 가장 효과적인 증시부양책이 될 것이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
출처 : 펜앤드마이크(https://www.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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